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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이야기

여행길인 한 지방에서 식사 때를 맞은 일행은 뭘 먹을까 고민하던 중 검색을 통해 어느국밥집을 찾았다.

익히 소문난 맛집이라는 그곳에 도착하니 문전성시라 할만큼 음식점 안이 사람으로 바글바글 발디딜 틈 없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국밥 5그릇을 시키고는 오래된 가게 분위기를 살피며 '진짜 오래된 집인가봐', '제대로 국밥나오나보다' 한 마디씩하면서 다른 테이블에서 맛있게 국밥 먹는소리와 표정을 보고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주문한 국밥이 나왔을 때, 



'헙!'
뚝배기 안에서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보글보글 끓는 국물 속에 푹 잠긴 밥을 눈 앞에 두고선 수미는 울상을 지었다. 

"뭐야. 밥이 말아져 나왔잖아. 다대기까지 아예 다 넣은 채로."
"그러게. 말 사람은 말고."

정희는 수저에 뜬 뜨거운 국물을 쭉 내민 주둥이로 흡입해 꼴깍 넘기고선


"말기 싫은 사람도 있을 테니까 그냥 주면 될텐데."

수미의 얼굴근육은 온통 못마땅함으로 일그러졌다. 숟갈로 뒤적뒤적 국물을 섞으며

"부추 상태가 제각각이야."

한 마디 더 했으나 일행들이 맛있다며 입김을 토해가면서 먹는 모습에 수미는 입을 다물었다.

'완전히 뻗었잖아. 아삭 뒤섞여 있고... '

딴 사람은 다 맛있다 잘 먹는데 , 수미는 

'왜 이걸 미리 말아줄까? 부추 익은 정도가 왜 다를까? 다대기도 각자 조절하면 되지 왜 미리 (뭘 다 안다고) 넣어줄까? 아예 다대기통 자체가 없는 것도 참 가관이고.'  

이런 생각을 하며 다대기를 푸는데, 하얀 국물 아래서 분홍국물이 튀어나왔다. 갑작스러워 움찔한 후 밥맛이 떨여져 반도 안 먹고 숟갈을 놓고 말았다. 

 돌아오는 내내 수미는 아무래도 자신이 별스런 의심병으로 점점 외식이 힘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 편으로는 무슨 대단한 항의를 한 양 여기며 숙소로 돌아와 컵라면에 물을 붓고 있노라니, 


"왜 아까 안먹고? 잔뜩 남기더니만."


묻는 말에, 수미는 아까 국밥집에서 느꼈던 황당함과 불만을 털어놓았다. 더하여 자신이 도무지 먹을 수 없었던 항의의 정신까지 설파하였는데,

"그러면 따로국밥을 시키지 그랬어."



"아니. 국밥집이니까 국밥을 시킨 거지. 그걸로 소문난 집이라면서. 당연한 거 아냐? 뭐가 문제야?"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수미에게 병화는, 

"국밥은 원래 국에 밥이 말아져 나오는 거야. 국이랑 밥이 따로 나오는 게 따로 국밥이고. 또 하얀 국물 아래 분홍 국물 소리는 다대기 양념장을 숟가락으로 뚝 떠서 넣은 것이라서 그렇게 보였나 본데 그냥 수저로 살짝 덜어내고 먹으면 돼."

그러자 수미는,
"아니 그럼 밥을 재활용할 수 있는 거잖아. 불결하게. 안그래? 안그런다는 보장이 어딨어?"



병화말고는 그때까지 폰에 절을 하면서 보내던 일행들의 고개가 쓰윽 떠올랐다.  영미가, 

"에이 그런거 이런거 다 따지면 국밥 못먹지."

"남이 먹고 남긴 더러운 밥, 다대기 다 재활용할 게 뻔한데 께름칙하지 않아?"

다들 입을 살짝 열었다가 다물었다. 낮게 뱉어내는 숨소리가 공기층을 눌렀다. 

"말아져 나오니까 못믿겠다는 건 아니라고 봐. 원래 국밥이란 게 식은 밥을 토렴해서 먹는 방식이야. '국밥을 제대로 한다, 라는 건 그런 거라고. 토렴해야 국밥이 맛있거든."

"그래. 맞아. 수미야. 이건 국밥집 가서 국밥스타일로 나왔다고 불만 갖는 거라 좀 그렇다."

"토렴이고 뭐고, 나는 식당에서 밥 비벼서 나오는 것도 국에 밥 말아나오는 것도 싫어. 믿을 수 없는 건 사실이잖아."

"그러면 국밥 안시키면 되고. 따로국밥이 있잖아." 


컵라면 용기를 버리러 가는 모양새로 자리를 벗어난 수미는 큰 컵에 물을 가득 따라 냉장고 옆에서 식탁까지 왔다갔다 어슬렁 거렸다. 한참 후 시끌벅적한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널부러지듯 기대앉은 수미는 폰을 매만지며 무언가 빠져들고 있었다. 토렴: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함.보온장치가 없던 과거에 밥을 따뜻하게 먹기 위해 고안된 방법.


토렴이 뭔지...  국밥의 유래를 알지 못해서 국밥이라는 자체를 제대로 몰랐던 무지를 깨우쳐 가던 수미. 자신의 무지로 인한 생떼와 처신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따지지 말고 물어 보고 잘 들어볼 걸 그랬어...' 하면서도 여전히 개운치 않은 무언가는 어쩔 수 없었다.

'이 사회에 팽배한  도덕적 양심에 대한 불신 문제는 분명하잖아. 내가 과민한 건 아니라고.'  

수미의 손가락은 계속 움직이고 수미의 폰 화면 또한  계속 스크롤링 되고 있었다.  



국밥의 유래.

쌀밥은 실온에서 보관할 경우 딱딱하게 굳어 먹기 힘들고, 습도가 높은 여름에는 금방 상해서 장기간 보관할 수 없었다. 농경사회였던 과거엔 대부분의 식사를 집에서 해결하고 기껏해야 새참을 먹는 정도라 장기간 밥을 보관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없었는데, 

후기 조선, 상업발달로 상인들의 외식률이 점점 증가하였다. 따뜻한 밥에 대한 수요가 늘어가는데 아궁이와 가마솥을 사용하는 조선 요리 문화의 특성 상 밥을 짓는 시간이 오래 걸려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에게 따뜻한 밥을 내어주기 매우 힘들었다. 애초에 개인에게 밥을 지어주는 문화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소량의 밥을 밥을 짓는 것 자체가 가마솥을 쓰는 상황에선 경제성에서 비효율적이었다. 이처럼 요리문화 자체와 경제 논리 때문에 밥을 손님을 받기 전에 먼저 지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밥은 미리 지어두면 찬밥이 되기 마련이고 이러한 찬 밥을 따뜻하게 만들어 먹기 위하여 찬 밥에 뜨거운 국물을 부어 밥을 따뜻하게 만들어 손님에게 내는 방법이 바로 토렴이다.


또한 이 토렴의 등장으로 인해 조선시대 외식 업종의 대부분을 국밥류가 차지하게 된다.

이와 같이 국밥은 국물로 여러 차례 밥을 덥히므로 밥을 넣고 끓인 것처럼 뜨뜻하게 먹을 수 있고, 쌀밥 낱알마다 국물이 배어들게 되므로 밥 자체가 맛있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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