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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에 없던 흐름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날씨 좋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먼저 떠올린 계획은 잠들기 전까지 붙잡고 있던 작업에 대한 것이었다. 보통 때 같으면 양치질이나 밥보다 먼저 PC를 켜고 꼼지락 거렸을 텐데, 먼저 들어간 화장실에서 바닥타일이 젖은 걸 확인하게 된 것으로 나의 오늘 일과는 예정에 없던 흐름의 연속이 되었다.

 

세면대 아래쪽 온수밸브 꼭지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욕실바닥이 젖어 있었던 기억.... 드라이버를 들고는 헐거워진 밸브꼭지를 좀 조여볼까 하다가, 순간 아!알아차렸다. 이건 이음마디 안의 고무패킹이 낡아서란 걸. 몇 년전까지 살던 집에서 오랫동안 집 관리를 직접 했던 터라 정신차리고 보면 쉽게 알 수 있던 것이었는데 그만큼 이전의 삶과 다른 방식에서 오는 어수선함이 현주소임을 깨닫는다.

 

주인댁에 말을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아주머니 특유의 차가운 반응을 떠올리니, 에혀- 한숨이 나온다. 욕실을 나오다가 입구 한쪽에 놔둔 양파에서 돋은 순이 길게 뻗은 게 보였다. 초록빛이 어찌나 싱싱한지 수경재배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박스채 주방으로 가져와 모두 다듬었다. 내친 김에 얼마 전 사놓고 손도 대지 않은 감자봉지도 가져왔다. 난방 온도 때문인지 감자도 싹이 나고 있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처리할 고민을 하다가 카레로 결정했다.

 

'잘됐다. 귤하고 같이 녀석에게 나눠주자.'

 

그때부터 양파, 당근, 감자를 깍고 썰고. 혼자 먹을거라면 절대 채소로만 할테지만 누군가에게 나눠 줄 목적인 만큼 냉동실에서 돼지고기 앞다리살도 꺼내 흐르는 물에 해동을 시키고... 또 중간에 쌀도 씻어 안치고, 그러는 중간중간 ... 아.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하면서도, 일단 손에 잡은 일 꼼짝없이 할 수 밖에 더 있나. 다행히 예전처럼 음식 하나 만들려다 두개, 세개 만들지는 않고 있었다. 어마나, 12시 38분. 내가 도대체 뭘 한 걸까. 전활 걸었다. 아직까지 이부자리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나보다. 녀석의 어버버하는 댓구에 통보한 후 족 잡아 20분 후 집을 나섰다.

 

 

햇살이 골목길가에 하얗게 쌓인 눈을 무심히 지나쳐가는 듯 양지와 음지가 뚜렷한 겨울날이었다. 산자락이어서 그런지 자연의 호흡과 맥박 같은 기운을 느낀 나는 더욱 동적인 열망과 흥분으로 상기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내 몸이나 저 뒷산이나 그 상태를 말해 볼 것 같으면, 살짝 언 흙 냄새 비스무리하다.

큰 도로로 나온 후론 자꾸만 쇼윈도에 비친 내 몸을 훑어 보게 된다.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작업만 하다보니 신체가 볼 품 없게 구부정해지는 것을 느낀다. 속상하다. 내가 가장 못참아하는, 싫어하는 모습으로 가고 있다. 이런... 마스크를 챙기지 못했다. 가방을 챙길 때까지도 떠올렸었는데 결국 빠뜨렸어... 집 밖을 나선지 5분 정도, 다시 돌아가야 할까? 그러면서도 내 발은 앞으로 계속 걷고 있었다. 

 

 

너무나 익숙했던 동네 안의 공기와 소품들이 이제는 간만에 보는 풍경이고 그저 어딘가를 향하는 동안 스치듯- 으레 지나쳐 가는 거리가 되었다. 난 아직 여기 살고 있는 주민인데, 분명 이것은 도로 하나를 건넌 지리적 구분이나 거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내 삶의 태도와 방식이 달라지게 된 환경의 변화는 차츰 - 혹은 때로는 - 드라마적으로 애틋함의 순위를 매길 수 없는 모든 것들을 생경하게 마주하게 한다.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것들로부터 다시금 처음이라는 경험을 시작하게 한다. 이 사실이 언뜻 기대하던, 답답함이나 잔잔함 혹은 무료함 가운데 찾은 활력으로서의 신선함이 절대 아니라는 것. 늘 제대로 뭔가 새롭게 다가오길 바라면서도 체질화된 습관과 마음에 깃든 가치관으로서 붙잡고는, 얼마나 놓기가 힘들었던가. 결국엔 덜거덕거리며 계속 나아가던 방향에서 급발진과 강제후진을 통해 급커브라는 충격적인 삶의 공중회전을 만나고서야 나는 그 난간을 붙잡고 매달린 내 손이 처연히 떨어지는 것을 스스로 보았던 것이다.

 

이미 목은 따끔따끔 거린다. 마스크를 챙겨나오지 못하고 공해를 들이킨 결과는 어디까지 갈까? 아주 나쁜 - 가령 죽음에 이를 지경에 이르지않길 바라는, 집중, 노력, 관리는 바람결이든 얼떨결이든 그야말로 넌센스한 운(fortune)을 드러내게 하거나 감추거나 한다는 것 정도는 알겠다. 그리고 그런 운은 주술과 같은 기도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기에 질병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태도와 자세가 달라질 수 밖에 없었던 나의 위치에서, 삶은 울어도 안울어도라는 것. 내가 나를 웃길 수만 있다면 적어도 자폐는 안될테고, 울지 않는 자폐상태보다 광년이가 낫겠다는 생각- 그렇게 하나의 질병을 대하는 스킬업 - 으로 지기와의 단절을 이겨내려는 '영구는 없는 실존의 제로'방식을 취하고 있다.

 

'아무래도 문자로 알려야겠지?'

중간즈음 위치에서 곱창집 앞 벤치에 가방을 내려놓고 손전화를 꺼냈다. 예전처럼 다정한 메시지는 내키지도 가능치도 않다.

 

시장.

 

아.. 시장앞이라고 해야는데... 그래서 덧붙였다.

 

앞.

3분정도 더 걸었고, 이제 계단을 내려가 왼쪽으로 꺽어 들어가면 된다. 지금 문자로 알리면 잠시 후 만나는 시간이 딱 맞겠다 싶었다.

 

집앞.

 

건물 현관 앞에 나와 있던 지기는 가져 온 걸 건네고 가려는 내게 들어와 차 한잔 하고 가라고 권했다. 내키진 않았지만 들어갔다. 자꾸 권해서라기보다 앞으로는 더욱 쉽지 않을 것이기에. 결과적으로 오늘 인연, 관계, 친구라는 기차철로 같은 대화가 이어진 것인데, 돌아보니 올해 이때가 적기이지 않을까 싶다.

 

다들 말하지 않는가. 이 나이대에 상처와 회의감으로 히스테리적 주변 정리를 하는 것에 대하여... 이미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가는 자기 반성과 내 그릇을 닦아야 하는 시간을, 오늘도 그렇게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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